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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학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연구에만 골몰할 뿐, 돈이나 명예나 세속의 권력이나, 혹은 아첨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체 대학에서 자신들의 지도교수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생각하면 그런 우습지도 않은 망상은 할 수 없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착각속에서 잘들 살아가고 있었다.
뭐, 그런 착각이 인류에게 어떤 위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니 넘어가자.
하여간 사람들이 품고 있는, 고결한 학자라는 이름의 환상은 지금까지 꽤 많은 학자들을 잡아먹어왔다. 아닌 말로 네놈들은 남의 프로젝트 한 번 안 기웃거려 보았으며, 옆자리 김대리가 만들다 만 파워포인트의 레이아웃을 몰래 슬쩍 베낀 적도 한 번 없었단 말이냐. 연구논문에 실을 사진을 좀 더 뽀샤샤하고 예쁘고 실험 데이터에 부합하게 만들어 보고자 포토샵질을 했다가 영광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진 어느 학자는 며칠 후 술을 마시며 그리 절규했다고도 한다. 가끔 어떤 개념 없는 이들은,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하여 특허를 취득한 학자를 두고 돈벌레라 비난하며, 퀴리 부인을 본받아 보라고 손가락질하곤 했다.
따지고 보면 뭐, 그 훌륭하신 퀴리 부인은 버젓이 아내가 있는 폴 랑주뱅과 연인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는데. 학자들에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죄없는 자가 돌로 쳐라 수준이다. 지금, 윤박사가 자신의 연구에 대해 어떤 취재에도 응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유난히 섬세한 그의 감수성으로는, 그렇게 트집을 잡아대며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악의어린 헛소리에 하나하나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다. 어쨌건 세간에 알려진 그의 이미지라는 것이 워낙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해서.
그는 염세적인 학자였다.
세간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그는 염세적인 사람이었다. 연구에 방해가 되는 활동은 물론 공정함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로 모든 종류의 상업적인 후원을 거부하고 자신의 연구에만 골몰하는 바람에, 그의 업적과 상관없이 그의 가족들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까지 생계를 위해 폐지를 주워야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다, 나라에서 온갖 연구비를 축소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연구에만 골몰할 뿐 교수로서 확고한 지위를 노린다거나 하는 데는 영 관심이 없었던 그는 그만 연구소에서 밀려나 비정규직 신세가 될 뻔 하기도 하였다. 그의 업적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위에다가 그 흔한 양주 한 병 갖다줄 줄 모를 만큼 센스라고는 없고 무심하고 무취미한 그런 사람이 그렇게 자기 하고픈 연구 하면서 산다는 것 자체가 무리긴 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그가 아주 안 유명한 과학자는 아니었던 것 정도일까.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과학자인 그가 그렇게 연구소의 권력싸움에 희생되었다는 식으로 글을 쓰고 항의를 해준 몇몇 파워 블로거가 설치는 바람에, 일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연구소는 그를 다시 받아들이고 주임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대충 그런 구조조정이 마무리될 무렵, 그는 다시 소리소문없이 해고당했다.
"엄청난 기술이군요, 이건."
그렇게 쫓겨나고, 병에 걸린 아내는 빚만 남기고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그런 개인적인 비극이 이어지며 사람들은 그가 완전히 몰락했다고 생각했다. 이 전무만 해도, 그가 이렇게 살아남아 다시 연락을 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 이전에 그가 이렇게, 대기업에 먼저 연락을 해 올 만큼 성격이 바뀔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말이 옳을까.
"이 기술을 우리에게 넘기겠다고 하셨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무는 그가 이 기술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인지 새삼 궁금해졌다. 아마도 그는, 돈이 될 만한 기술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것이고, 아무래도 뉴스에 만날 나오는 게 환경 문제이니 그쪽으로 개발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세속적인 일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지. 그래도 그나마 한국 최고의 대기업 회장의 장남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뜻일까. 예전에 잠시 만났을 때, 언제고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건네주었던 명함에 적힌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온 남자의 목소리는 그저 고요하고 침착했다.
"......이 연구는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겠군요. 아시다시피 지금 정부에서 강조하는 것은 역시 환경문제고, 탄소 배출권 문제도 있고."
"그리고 귀사의 이미지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기술이라니, 완벽하잖아. 탄소배출권을 돈으로 바꾸는 문제만 해도 그렇고. 엄청나게 돈이 되면서도 회사 이미지를 돋보이게 할 만한 사업이다. 이 기술이 사실이라면 투자할 가치가 있어. 이 전무는 조금은 흥분해 있었다. 그런데다 윤 박사는, 이런 문제로 사기를 치거나 할 만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아마 이 기술은 틀림없이 실현 가능한 것일테다. 물론, 어느정도의 검증을 더 거쳐야 하겠지만.
"이건 또 뭡니까."
윤 박사는 서랍을 열고 데이터가 저장된 기록매체 하나를 꺼내었다.
"사소한 취미입니다만."
세상에, 이 남자. 날 감동시키려고 작정을 했군. 이 전무는 침을 꼴깍 삼켰다.
"여자들이 아주 골치아파 하지요. 세균이나 박테리아, 곰팡이 같은 것 있잖습니까."
"아, 그렇지요."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에 윤 박사가 내놓은 것이야말로 진짜 엄청난 물건이었다.
"원액입니다."
윤 박사는 원액을 소주잔에 한 잔 따라 마시고 빈 잔을 보여주었다.
"인체에는 안전하지만 1/10^28배 희석액으로도 충분히, 온갖 세균이나 박테리아, 곰팡이 등을 박멸할 수 있습니다. 한번 뿌려놓으면 스스로 확산되며 주변의 미생물들을 죽입니다. 데이터를 보시겠습니까."
잠깐, 그 흔하디 흔한 살균세정제 같은 것에 무슨 감동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주부의 마음으로 뭔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대체 왜, 그 대형 마트에 락스부터 시작해서 곰팡이를 죽인다, 살균을 시켜준다는 온갖 세제들이 그득그득한데도, 여전히 그 비슷한 물건들이 쏟아져나오겠는가. 일단 실용화만 된다면 그야말로 떼돈을 벌어들일 물건이다. 갓 입사한 당시, 아버지의 명령으로 가정용 세제 쪽에서도 근무해 보았던 이 전무는 바로 이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자, 물건을 봤으면 이제 거래를 터야지.
"제게 연락하신 이유는."
이 전무는 알면서도 모르는 체, 짐짓 웃음을 흘리며 떠보듯 말했다. 그 방식이 이 세상살이 서투른 학자에게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은 조금 후에야 생각해내긴 했지만, 윤 박사는 그런 어색함에는 익숙한 듯, 어쩌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에러인지도 인식하지 못한 듯 태연히 대꾸했다.
"지금 보여드린 것을, 이 전무님께 넘기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연구 성과를요?"
"특허권을 포함해서 모두 넘기고 싶습니다. 어느정도의 대우를 해 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만.
물론 윤 박사야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지만, 이렇게까지 순순히 나오는데 선뜻 최고의 대우를 보장한다는 것도 우습다. 이 전무는 슬쩍 제 발끝을 쳐다보는 체 하며 눈알을 굴렸다.
"글쎄요......"
물론 이 정도의 기술이 있다는 것을 다른 데서 알게 된다면, 역시 손에 넣으려 골몰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바로 최고의 대우를 해 주겠다 말하기도 어려웠다. 먼저 연락해 온 사람이 이런 것들을 보여준다는 것은 역시, 그만큼 돈 문제가 급했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는 일인데다.
"회사의 이미지 개선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일단 당장 시급한 문제는 아니고......"
"그렇습니까."
"하지만 윤 박사님의 연구인데, 제가 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요. 아니, 사실은 회사 여건만 좋아지면 언제라도 실천에 옮기고 싶은 프로젝트입니다. 아주 흥미롭군요."
이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정도를 원하십니까."
이렇게 곤란할 때는 차라리 원하는 액수를 대놓고 물어보는 쪽이 편하다. 다행히도 윤 박사는 생각해 둔 바가 있었는지, 조심스레 금액을 입에 올렸다.
"팔...... 천만원 정도면."
"팔천만원요?"
한 연구만 봐도 팔천만원 이상의 값어치는 하고도 남을 건수다. 그런데다 특허권까지 이쪽이 넘겨받는 조건이라면 더욱이.
"예, 둘을 합쳐서 팔천 정도면......"
아니, 업계 최고의 대우까지는 못 해주더라도 이건 아니다. 이 사람이, 그 열 배를 불러도 줄 수 있을 연구를 해 놓고 이게 무슨 헛소리인지. 이 전무는 한껏 너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만하면 이 소심한 학자를 잔뜩 감동시킬 수 있다. 원래 주어야 할 돈의 십 분의 일 밖에 안 주고도.
"그럴 수는 없지요, 박사님."
"안...... 되는 겁니까?"
"박사님의 연구는 소중합니다. 그 이상을 받을 가치가 있어요. 그래요, 이거 온실가스는 중요하니까 그 비용 다 받고 가고, 세제 쪽은 그 반을 드리지요. 다 해서 1억 2천이면 어떻습니까?"
이런 산타클로스 같은 역할이라니. 이 전무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이 역할이 더할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다. 누가 무어라 하겠나. 정부에서도 강력하게 밀고 있는 녹색성장, 녹색사업인데. 1억 2천을 약속하고 돌아오는 내내, 이 전무는 윤 박사가 넘겨준 연구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집에서야 경영학을 전공하라고 했지만, MBA는 했어도 대학 학부는 공과대학으로 간 덕분에, 이런 내용들을 한번에 보고 알아볼 수 있을 내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흰게 종이요 검은 게 글씨라고 생각할 만큼 몽매한 것은 아니었다. 어쨌건, 사내 연구소에서 다시 분석해보면 어느정도 경제성이 있는 연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잘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더라도, 그 새로 개발한 인체에 무해한 살균제만으로도 1억 2천의 돈값은 하고 남는다. 이 전무는 콧노래를 불렀다. 다른 형제들 때문에라도 앞날이 걱정되던 이 마당에, 예전에 뿌려놓은 명함 한 장이 이런 효자 노릇을 할 줄 누가 알았을까. 이 전무는 자료철을 덮었다. 자료철 앞에는 그다지 달필은 아닌 필체로, 네임펜으로 꾹꾹 눌러 쓴 듯한 표제가 붙어 있었다. "부장 프로젝트". 이 사람, 우리 회사 연구소에서 부장이라도 달고 싶었던 걸까. 그러면 말을 할 것이지. 어쨌건 이 은혜는 톡톡이 갚을 참이었다. 언제가 되었건 간에.
그것이 2009년 8월의 일이었다.
2009년 9월, 윤 박사는 이 전무에게서 받은 1억 2천으로 아내의 병 치료 때문에 빌린 돈을 모두 갚고, 남은 돈을 홀로 되신 장모님 계좌에 모두 넣은 뒤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눈물겨운 순애보였고, 아깝기도 했다. 그런 천재적인 머리를 하고도 이놈의 나라에서는 비정규직 연구원밖에 할 수 없었다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나마 지금 이 전무가 때맞추어 지금의 프로젝트는 윤 박사의 연구에 기초한 것이라고 보도자료를 내보내지 않았다면 그대로 묻혔을 죽음이었다. 이 전무는 어쨌건 할 만큼은 했다. 그의 짧은 생애와, 짧은 생애에 걸맞지 않을 만큼 다양한 방면으로 성과를 거둔 연구와, 그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 신문들은 짧지만 충실한 기사를 내보냈다. 여기저기 블로그에서 그를 추모하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그런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연구가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연구라니, 환경 쪽에 관심이 좀 있다는, 자타공인 개념찬 이들의 글도 뒤늦게 올라왔다. 그런 글을 진즉에 보았으면 그 사람은 죽지 않았을까. 이 전무는 윤 박사의 발인 날에 맞추어 그의 몸이 한줌 재로 변하여 그 아내 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했지만, 그런 감상적인 생각은 길지 않았다. 죽은 자를 이대로 죽게 하지 않는 방법은, 그의 연구를 살려내는 방법 뿐이지. 문득, 그에게 그의 연구의 가치는 1억 2천이 아니라 그 열 배는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전무는 그런다고 해도 우울증 걸린 사람을 어떻게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2010년 3월, 윤 박사가 개발한 강력 살균제는 안전성과 그 우수한 실용성을 자랑하며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갔다. 비록 상품화된 희석액일지언정 이 전무 본인이 소주잔에 살균제를 따라 완샷하는 충격적인 홍보 동영상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여기저기서 완샷 인증 동영상이 용자의 상징처럼 올라오는 바람에, 회사에서는 광고 하단에 "인체에 무해하지만 음용은 자제해 달라"는 너무나 뻔하고 상식적인 멘트를 굳이 넣어야만 했다.
2010년 10월, 거의 완성단계로 실용화만 앞두고 있던 윤 박사의 연구가 비로소 실용화되었다. 주식은 큰 폭으로 뛰었고, 녹색성장을 강조하던 정부에서도 이에 대해 크게 치하하며 전국적으로 온실가스 제거 장치를 설치하고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전무 역시 승승장구했다. 아들들 중 누구에게 기업을 물려줄지 계속 재어 보고만 있던 회장은 이번 일의 공을 두고 이 전무를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했고, 회사를 물려주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2013년 2월, 고추장, 된장의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이런 일에 크게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윤 박사의 살균제는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이 전무는 마침내 회장으로 취임하였고, 아시아 전역에 이어 중동과 유럽 쪽에도 그 온실가스 제거 장치를 수출하게 되었다. 이제 회장이 된 그는, 윤 박사에게 선심쓰듯 생색을 내며 1억 2천을 주었던 일을 떠올리고 그 장모와 처가 쪽 식구들에게 평생 먹고 살 거리를 장만해 주었다.
콩의 뿌리에 존재하며 질소 고정 효과를 불러일으키던 뿌리혹박테리아가 사라지고, 땅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사람이 죽어도 썩지 않아 태우지 않고는 처분할 길이 없는 시대가 된 것은 그로부터 10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사라져버린 곰팡이와 세균도 문제였지만, 태양 흑점의 활동이 잠잠해지기 시작한 시점에 맞추어 온실가스가 대대적으로 제거되며, 지구의 온기 역시 식어가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때 사람들이 살아가던 이야기 같은 것은 더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그때는 아직, 이해관계가 그림같이 맞물려 승리감에 도취된 상층부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지구 온난화를 막아주는 장치에 환호하던 사람들이 남아있던 그런 시대를. |